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글 전 한국어 표기 (문단 편집) == 대원칙 == [[한자]]를 빌려쓴다. 아래에서 서기체를 빼놓은 이두, 구결, 향찰은 모두 차자표기(借字票記, 한자빌림표기)를 그 바탕으로 하고있다. 한자는 형(形)・음(音)・의(意), 다시 말해 글자 형태・소리・뜻으로 구성되어있다. 중국인에게야 소리가 곧 뜻으로 와닿겠지만, 한국인, 일본인, 월남인, 장인(壯人)에게는 한자소리와 고유어어형이 별개로 느껴질 것이다. 예를 들어, 「天」은 「天」이라는 꼴과 「천」이라는 한자소리, 「하늘」이라는 뜻으로 구성되어있다. 똑같은 형태를 쓰되 소리를 빌려 표기하는 방식, 의미를 빌려 표기하는 방식이 있는데 위의 예를 예시로 들면 「天」을 「천」으로 읽는 소리빌림, 「하늘」로 읽는 뜻빌림이 있는 것이다. 소리빌림과 뜻빌림은 좀 더 세분화되는데, 소리빌림은 소리를 빌렸으면서 해당 한자의 뜻도 살린 음독자(音讀字)와, 소리만 빌리고 해당 한자의 의미를 무시한 음가자(音假字)로 나뉘며, 해당 한자에 부합하게 뜻을 빌린 훈독자(訓讀字), 뜻을 빌리되 본래의 한자 뜻과는 별 상관없는 방향으로 읽은 훈가자(訓假字)로 나뉜다. 좀 많이 복잡하므로 표로 확인해 보자. || 분류 || 한자(뜻 음) || 읽기법 예시 || 해설 || || 음독자 || 道(길 도) || 도 || 한자의 음인 '도'라고 읽되 실제 의미인 '지켜야 할 길, 도리'까지 의도하여 읽으면 음독자 || || 음가자 || 刀(칼 도) || 도 || 한자의 음인 '도'라고 읽되 실제 의미인 '칼'이라는 의미와 상관없이 보조사 '도' 등에 이용하면 음가자 || || 훈독자 || 天(하늘 천) || 하늘 || 한자의 뜻인 '하늘'이라고 읽되 실제 의미인 '하늘'까지 의도하여 읽으면 훈독자 || || 훈가자 || 如(같다·답다 여) || 다 || 한자의 뜻인 '~답다(≒~같다)'에서 따온 '다'라고 읽되 실제 의미인 '~답다'와 상관없이 종결 어미 '-다' 등에 이용하면 훈가자 || 이하는 자주 사용되는 가자(假字)들이다. * 표시는 훈가자. > 加(가), 居(거), 去(거), 古(고), 高(고), 果(과), 斤(근), *厼(금), 只(기), 介(개), > 乃(나), 那(나), *汝(너), 奴(노, 로), 尼(니), *斤(ᄂᆞᆯ), > 多(다), *如(다), *加(더), 丁(뎌, 뎡), 刀(도), 道(도), 豆(두), *置(두), *月(ᄃᆞᆯ), *冬(ᄃᆞᆯ), *等(ᄃᆞᆯ,들), 知(디), > 羅(라), 良(라), 老(로), *以(로), 陵(르), 里(리), 立(립), 來(ᄅᆡ), > 亇(마), *休(말), *味(맛), 毛(모), 勿(믈), 彌(미, 며), 每(ᄆᆡ), > \*所(바), 朴(박), 甫(보), 夫(부), *火(블), 非(비), > 叱(ㅅ), 沙(사), 所(소), 數(수), 示(시), 時(시), 賜(ᄉᆞ), 史(ᄉᆞ), 士(ᄉᆞ), *白(ᄉᆞᆲ,ᄉᆞᆸ), 參(ᄉᆞᆷ), > 阿(아), *良(아), 也(야), 於(어), 余(여), 亦(여), 五(오), 烏(오), 臥(와), 隱(은), 乙(을), 音(음), 邑(읍), 衣(의), 矣(의), 伊(이), > 召(조), 之(지), 齊(졔), > 吐(토), > 何(하), 乎(호), 屎(히), > 兒(ᅀᆞ), 耳(ᅀᅵ) 아래의 이두, 구결, 향찰같은 세 표기 방식은 따로 쓰임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이두나 구결은 실용서에 이용되었고, 그 쓰임이 조선 말까지 1천년 넘게 이어졌다. 향찰은 주로 운문, 그가운데서도 [[향가]]를 쓰는 데에 이용되었고, [[서동요]], [[제망매가]], [[처용가]] 등이 향찰로 쓰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한문시가 정착하면서 향가 전통이 고려 중기에 단절되었고[* 현재까지 전해지는 고려 향가는 승려 [[균여]]가 967년 이전에 지은 11수의 [[보현십원가]]와 1120년 고려 [[예종(고려)|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뿐이다. 이외에도 1021년 건립된 〈현화사비〉에 따르면 고려 [[현종(고려)|현종]]이 직접 향풍체로 노래를 지었다고 하며, 신하 11명에게도 완공을 축하하는 시뇌가를 짓게 했다고 하나 현전하지 않는다.], 이후에는 오히려 향찰로 쓰인 향가를 한문시로 번역하여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할 정도였다. 다만 고려 후기의 석독[[구결]] 자료 및 [[향약구급방]] 등의 문헌에서 향찰과 유사한 방식의 차자표기가 발견되므로 이때까지는 명맥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